〈안식〉 속 남자는 홀로 남은 집에서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. 사진 속 여자아이는 곰 인형을 안고 있고, 남자아이는 별 모양의 안경을 썼다. 환하게 웃는 두 아이,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은 부인은 사진 속에서 남자와 함께다. 사진이 있던 탁자 위에는 별 모양의 안경과 곰 인형을 포함해 초, 향수, 그리고 화분에 꽂힌 몇 송이의 꽃이 있다.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바라보던 남자의 집은 그러나 곧 굉음과 함께 폭격으로 무너지고 만다. 흩어진 탁자 위 물건들을 가방에 챙겨 집을 나서는 남자 앞에 펼쳐진 도시 역시 이미 폐허다. 물을 구할 수 없던 남자가 어쩔 수 없이 가방 속 향수를 마시자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몸에서 수도꼭지가 솟아난다. 그렇게 남자는 사막과 물을 건너 죽음일지, 아니면 난민 캠프일지 알 수 없는 곳에 도달한다. 목숨만 겨우 유지한 난민의 벌거벗은 삶과 그들이 잃어버린 것의 무게를 함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.